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Art Critque
* 안소연 / 미술비평가
* 윤원화 / 시각문화연구자
거의 보이지 않는
이영호 개인전 :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2023.10.10-11.16 _ prompt project gallery
안소연 / 미술비평가
이영호 개인전 :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2023.10.10-11.16 _ prompt project gallery
안소연 / 미술비평가
때때로 몸통이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보다 뜨거운 햇빛을 등지고 잔바람에 몸을 기울여 조용히 떨고 있는 들풀에 하염없이 시선을 가져다 둘 때가 있다. 정오의 태양 광선을 피해, 지는 해에 붉게 물든 하늘이 눈 감고 어둠을 쏟아내는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볼 때가 있다. 4월 개천가 나무에 작은 이파리들이 밤새 돋아나면 주변이 온통 연두색 점들로 일렁이는 초저녁 풍경이 가슴 벅차게 온몸에 스며들 때가 있다. 1월 한낮에도 짙은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시선 둘 데가 없는 메마른 겨울 대지 위로 쏟아지는 눈송이를 하나하나 손바닥 위에 받아 올려 사라질 때까지 본 적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육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물질 상태로 평평하게 가라앉았던 말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해 기억한다. 우리는 언제나 거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면서 그 속에 있는 나를, 그것을 보고 있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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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꿈에서, 혹은 잠결에, “쿵”하는 거대한 소리를 듣고 놀라서 잠을 깨는 사람의 이야기를 어떤 영화에서 봤다. 어디, 땅 속 근원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산과 산을 넘어 저 멀리 떨어진 어떤 허공에서 날아든 소리인지, 혹시 우리가 알 수도 없는 다른 시간, 다른 육체, 다른 만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동은 아닌지, 미지의 소리는 어떤 실체를 찾아나선 그를 삶과 죽음 사이에 유예된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갔다. 나는, 그 영화를 세 번이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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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어느 날 오전이었는데, 전시장 안에는 이미 햇빛이 제법 들어와 있었다. 큰 창이 한쪽 벽에 격자 모양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그리 들어온 각각의 빛의 모양은 벽과 기둥에 반응하며 사방에 밝은 얼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무채색의 그림들이 밖에서 들어온 나무 그림자와 겹쳐서 어떤 건 빛과 그림자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장지에 금박을 입힌 <무제>(2019)는 창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어 빛과 그림자의 파동에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지만, 스스로 얕은 빛을 내다가도 마주한 물체/사람의 그림자를 흡수하면서 제 형상을 흐릿하게 감추는 작은 요술을 부린다. 이영호는 얼굴 거울 만한 크기인 가로 22cm와 세로 27.5cm의 이 그림을 한쪽 벽에 떨어뜨려 놓고, 거기서부터 전시의 동선을 꾸렸다. 전시 제목은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로, 나는 신중한 보기를 다짐하며 눈 앞에 연속해서 펼쳐진 (한번쯤 미리 본 적 있는) 큰 그림들 앞으로 계속해서 다가가 본다.
그는 대체로 색을 뺀 무채색의 검은 점과 선을 사용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네 개의 <섬성(ISLANDNESS)>(2022/2023) 연작은 세로의 길이가 2m에 가까운 큰 그림으로, 장지에 목탄, 먹, 돌가루, 아교, 호분을 재료 삼아 추상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까 그 빛과 그림자에 섞여 일부가 일시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던 그림들은 똑같은 재료를 써서 정사각형 모양의 종이 위에 그려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Interprète)>(2023)이라고 제목 붙였다. 두 개의 연작 모두 어떤 형상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이상할 만큼 추상적인 형상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갖지도 못한 채 이 형상들이 무언가로부터 혹은 어디로부터 떨어져 나온 미완의 이미지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자꾸 좇게 한다.
섬, 섬의 이미지를 자처하는 <섬성> 연작은 거리를 두고 멀리서 봤을 때는 판화나 인쇄물처럼 얇고 평평해 보여서 무언가의 희미한 자국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과연 저 이미지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고 다가가 그것과 더욱 밀착해 보면, 종이 위에 가해진 타격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점들이 빼곡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한 인상에 빠져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최소한의 양감을 가진 덩어리들이 임의의 지지체 위에 덕지덕지 붙어서 거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내가 봤다는 증언을 해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이 둘 사이의 격차는 현실을 뛰어넘어 상당한 거리를 벌려 놓는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도 마찬가지로, 흰 색 바탕 위에 어떤 불확실한 흔적처럼 “남겨진” 추상의 점과 선들이 흩어져 있는데, 검은 색 그림과 흰 색 바탕 사이를 오가며 우리의 시선은 부재하는 것에 대한 보기를 시도하면서 이 흐릿한 이미지에 대한 “접촉”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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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섬성>은 거대한 두께를 가진 오래된 침전물이 어떤 순간에 하나의 이미지로 목격된 순간의 정황을 반영한다. 도시의 인공 기물을 구성하는 투명한 유리판에 물과 먼지가 고여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섬, 그것의 평평함과 그것의 두께가 공존하는 임의의 형상, 이영호는 그러한 불확실한 대상이 현존하는 방식으로서 원대한 이미지를 사유해낸다. 그는 풍경 속에 자리잡은 미미한 형상들, 일상성이 구축된 삶의 시공간 속에서 채 길들여지지 않았거나 어쩌면 그것[시공간]의 균열에 작용하는 무명의 것이거나 아예 초월적인 것들, 게다가 태초 혹은 원형에 가까운 변화무쌍한 물질적 현존의 실체들에 눈을 돌려, 그것이 현재의 순간에 내포하고 있는 감각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을 모색한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에 관하여는, 수행의 주체가 모르는 사이에 변환되었다가 다시 되돌려지는 현상적 관계가 계속해서 조율된다. 눈 덮인 겨울 풍경은 죽은 식물의 “사체”를 오롯이 하나의 흐름 속에 재배치하여 그것의 (순수한) 물질적 형태 자체와 마주할 현실 공간을 제시한다. 단단한 지표면 같은 불순한 것들을 감추고, 죽음 혹은 (비가시적인) 어둠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들로 구별되는 순간을 그는 포착해내려 애쓴다. 이때, 이미지들은 누군가의 신체 앞에 나타난 것으로서, 마주한 형상[대상과 신체] 간의 “거리”를 긴밀하게 조정하면서 그것과의 접촉/만남이 성취된다. 열다섯 개의 동일한 제목을 가진 정방형의 그림들이 크고 하얀 벽 위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펼쳐 놓아졌을 때, 그것은 완성된 형태로 정지해 있기를 회피하고 여전히 빛과 그림자 안에서, 그 범주 안으로 들어온 신체 앞에서, 일련의 반응하는 물질이 되기를 감수한다.
이러한 이미지들과의 만남은 감각적인 접촉을 수반하는데, 말하자면 그것의 현존하는 “상태”에 다가갈 숨어 있는 시공간의 경로들에 대하여 (리듬 분석의 차원에서 르페브르가 말한) “감각적인 것의 복원”을 꾀한다. 이영호는 그가 주목해온 생태적인 풍경이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순간에 대한 경험을 작업의 과정과 동기화 해서, 침전된 상태로서의 이미지에 다가갈 가능성을 좇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한국화 재료와 형식을 그가 다룰 수 있는 임의의 생태적 조건이라 생각했는지, 주로 장지를 사용해 아교와 호분, 돌가루로 지형(紙形/地形)을 다진 후에 목탄과 먹을 써서 신체의 흔적이자 발견된 형상이자 물질적 현존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거의 보이지 않는, 움푹 파인 어딘가에 얼룩처럼 눌러 붙어 버린 수상한 침전물들처럼, 이영호는 불확실성을 함의한 물질들에서 이미지를 발굴해낸다. 그것은 “나”의 보는 행위와 “이미지”의 보여지는 수행성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이영호는 이를 작업의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신체와 물질의 관계 속에서 반복한다.
세 개 층의 전시 공간 중에서 지하 층은 인공 조명과 조성된 소리가 결합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이끈다. 이영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에 퇴적해 있는 형상들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일에 열중해 왔는데, 그는 <섬성>에서 모티프가 됐던 고인 물의 흔적처럼 미미한 물질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 거대한 자연을 이루며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를 드러내는 창의적 수행성에 가담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예컨대, 가시적인 거리 안에서 (비로소) 발견된 추상적인 물질 상태의 언 바다의 표면 사진은, 아무런 차별성 없이 동일한 제목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을 부여함으로써 일종의 촉각적이고 심지어 청각적인 감각의 복원을 꾀하는 이미지로 소명을 다한다. 그것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연작 안에서, 폐섬유의 추상적인 질감과 폐강화유리의 차갑고 날카로운 촉감으로 연쇄하면서, 이들을 포괄하며 공간을 회전하는 푸른 색의 인공 조명과 깨진 강화유리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증폭시킨 사운드 효과와 결합하여 어떤 형상, 어떤 이미지의 층위를 낱낱이 조명하는데 이른다.
안소연 / 미술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언어를 통한 이미지 사유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최근에는 비평의 언어와 글쓰기의 행위를 통해 예술적 삶의 가치와 실천의 방법을 찾고 있으며, 창작으로서 비평적 협업의 방법들을 실험하고 있다. 비평적 말하기 활동으로 “인터뷰 프로젝트-우리 시대의 예술가”(2021)를 기획했으며, 조각에 대한 동시대적 재인식의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EN)
Barely Visible
Young Ho Lee Solo Exhibition :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10 . OCT - 16 . NOV . 2023 _ prompt project gallery
Ahn Soyeon / Art Critic
Young Ho Lee Solo Exhibition :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10 . OCT - 16 . NOV . 2023 _ prompt project gallery
Ahn Soyeon /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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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imes rather than a leafy tree with a large trunk, the eyes rests on wild grass hiding from the hot sun and quietly shivering against the fine wind. Hiding from the rays of the noon sun, we at times look in awe at the spectacle of the sky reddened by the setting sun which spills out darkness. Sometimes when small leaves of trees next to a stream sprout out all night long in April, the early evening surrounding landscape of flickering light green dots permeate into the whole body. When it’s pitch dark even in the middle of the day in January, I have seen snowflakes, which fall on top of the dry winter land with nowhere to look in the deep darkness, each resting on my palm until it disappears. I remember the speechless moment when my father’s body sank flat into a material state that was no longer visible. When we see something that is barely visible, we always see ourselves in it, and ourselves looking at that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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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tched a movie about a person who wakes up frightened every night in dreams or even in sleep to a loud thud sound. Whether the sound is from the underground somewhere, air which flew in from far away traveling past mountain after mountain, or a wave from a different time, body or encounter, the unknown sound takes the person into another dimension of life and death as he pursues the true nature of the sound. I watched the movie thre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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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ning in October, the gallery was already saturated with sunlight. Large windows in a grid format are arranged side by side on a wall and the shape of the light coming in through the window reacts to the wall and pillar to create a bright stain throughout. Some achromatic paintings, overlapping with a shadow of a tree from the outside, vanished completely inside the light and shadow. Although Untitled (2019), jangji (mulberry Korean paper) covered with gold, appears irrelevant from the commotion because it is placed afar from the window, it also absorbs the shadows of the facing object/person while making a slight light by itself and performs a small magic of hiding its form in a blurry matter. Young Ho Lee placed this small face-sized-mirror painting (22cm wide and 27.5cm high) on a far wall and used it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exhibition. As the title of the exhibition is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I was determined to carefully approach and see the continuous big paintings (that I have seen before) spread out before my eyes.
The artist mostly works with lines and dots of achromatic colors to draw on paper. ISLANDNESS (2022/2023) is a series of four large abstract paintings about 2 meters in height with materials such as charcoal, black ink, rock powder, glue and whitewash on traditional Korean paper jangji. Interprète (2023) is also a series of paintings, as mentioned above, that overlaps with a shadow from the outside to vanish completely inside the light and shadow, painted on top of square jangji utilizing the same materials. Both series do not show concrete forms yet also very strangely do not convey absolute trust for abstract forms, making me repeatedly wonder whether these are incomplete images that have fallen from something or somewhere.
ISLANDNESS series, the pretension of the island image, looks thin and flat like an engraving or a printed material with faint impressions of something when viewed from a distance. When I approach it closely to figure out the image’s reality, my eyes are filled with dots that convey the blow in which they were stuck. To exaggerate as if I were deeply drawn to this impression, I wanted to testify that I saw minimum lumps attached to a random support for a spectacular sight. The gap is a very vast distance surpassing reality. In the Interprète series, “remaining” abstract dots and lines are scattered on the white background like unclear traces. As our eyes move back and forth from the black painting and the white background to see the thing which is absent from our view, we understand the “contact” of this fain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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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Young Ho’s ISLANDNESSreflects on the moment a thick old precipitate is perceived as an image. A clear glass plate made up of city’s artifacts that have accumulated dirt and water over a long time becomes an island and an arbitrary shape in which flatness and thickness coexist. Young Ho Lee conceives of grand images as a way for such unidentifiable objects to exist. By turning his eyes to minute objects that have settled in the landscape, unnamed something that has not yet been tamed by or has transcended time and space in everyday life, as well as to the ever-changing entities of material existence close to the beginning or original form, he seeks to reach the implicit sensuousness of the current moment.
As for Interprète, a phenomenal relationship is constantly readjusted where the subject is transformed and turned around without awareness. The winter landscape blanketed with snow represents a real space in order for the “corpse” of dead leaves, that is rearranged inside a current, to encounter its (naïve) materialistic form. He hides impure things, such as the solid surface of the earth, to capture distinct moments with images lifted from death or (invisible) darkness. At this time, these images have appeared in front of someone’s body and the “distance” between the encounter [object and body] is sensitively adjusted so that the connection is established. When the fifteen paintings with the same title line up on a grand white wall to become a single landscape, they refuse to stay as a completed form and endure to become a series of reacting substances inside the light and shadow and in front of the body that has entered its range.
Meeting these images entails sensuous contact, a “restoration of the sensuous” (from the perspective of rhythmanalysis by Lefèbvre), to reach the existing “state” of sensuous touch via hidden spatio-temporal paths. Young Ho Lee has been focusing mainly on ecological landscape, synchronizing with the work process which appears as an experienced sensuous moment, and chasing the possibility of it being an image in a precipitated state. Perhaps because he thought that Korean painting materials and methods were arbitrary ecological conditions he could tackle, he mainly utilizes jangji and after consolidating the terrain with glue, whiting, and rock powder, he uses charcoal and black ink to show an image that intersects body trace, discovered shape, and materialistic presence.
Like strange precipitates that are barely visible and looking like stains stuck on something hollow, Young Ho Lee unearths images from uncertain materials that imply uncertainty. Young Ho Lee repeats this intricate relationship between the “my” act of looking and seeing the “image” which occurs between body and material in his work process.
Of the three floors of exhibition space, the basement floor brings a different atmosphere due to a combination of artificial light and created sound. Young Ho Lee has been absorbed in documenting and collecting forms that have been deposited in nature over a long time. He testifies that he is taking part in creative performativity as the vague materials, like the traces of stagnant water are the motifs of ISLANDNESS, become a vast nature over time to reveal changing images. For example, by naming the photograph of frozen sea surface, which is in an abstract materialistic state (finally) found in a visible distance, Interprète without any distinction, Lee fulfills his calling with an image which is kind of tactile, perhaps even a plot to restore creative sensitivity. By combining abstract texture of wasted fiber and cold and sharp texture of wasted tempered glass, while also comprehensively circling the artificial blue light in the space along with the sound effect that has amplified the sound of the surge of the fractured tempered glass in the Interprète series, Lee illuminates in detail each layer of any form or image.
Soyeon Ahn / While working as an art critic, she has been interested in thinking about images through language and has attempted various types of writing. Recently, I have been searching for the value and practice of artistic life through the language of criticism and the act of writing, and am experimenting with methods of critical collaboration as a creative work. As a critical speaking activity, we planned “Interview Project - Artists of Our Time” (2021) and are researching the process of contemporary re-perception of sculpture.
이미지가 떠오르는 긴 시간
이영호 개인전 :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2023.10.10-11.16 _ prompt project gallery
윤원화 / 시각문화연구자
이영호 개인전 :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2023.10.10-11.16 _ prompt project gallery
윤원화 / 시각문화연구자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없다. 그림처럼 보이는 것들이 그림처럼 진열되어 있다면 그림을 보는 관습적인 방식에 의지할 수 있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림을 만들고 또 보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그 중에서도 현대 화화는 ‘무언가를 그려 보인다’는 자명한 행동을 재검토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많은 화가들이 아무것도 그리지 않으면서 단지 붓질을 하고 그 결과를 살핀다. 이미지가 투입되지 않은 물감 얼룩은 엄밀히 말해 그림이 아니라 그에 관한 하나의 질문, 또는 순수한 탄성이다. 그림들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도약하여 자신의 조건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반대로 붓을 잡지 않고 그림 같은 것을 만드는 화가들도 있으며, 그들의 결과물은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표명하는 노골적인 그림이 되거나 아예 그림의 형태를 취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네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림을 긍정하고 그림을 보여준다. 둘째, 그림을 긍정하면서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 셋째, 그림을 부정하면서 그림을 보여준다. 넷째, 그림을 부정하고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영호의 경우는 언뜻 보면 두 번째에 해당되는 듯하다. 그의 개인전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에는 명백하게 그림 아닌 것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림처럼 보이는 것들 역시 ‘이것들을 그림으로 봐도 될까?’ 하는 머뭇거림을 불러일으킨다. 목재 패널에 장지를 고정하고 호분과 돌가루를 입힌 드로잉 작품들은 하나의 그림이기에 앞서 정교하게 제작된 하나의 물체로서 다가온다. 그것들은 전시장의 백색 벽면과 유사한 인상을 준다.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체가 되기에는 조금 약하지만, 면을 덮는 용도로는 충분히 튼튼하고, 다만 경도가 높은 물체에 닿으면 긁힌 자국이 생길 것 같다. 사물의 표면이자 그림의 몸체로서 종이는 광학적으로 투명하지 않으나 맑은 빛을 머금고 있다. 그 다공성의 물질적 층에 안료와 용제가 흡수되어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마도 이것이 전시 제목이 묘사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림은 식물 섬유, 광물성 입자, 동물성 접착제가 혼합된 반투명한 두께 속에 존재한다. 이미지는 빛을 반사하는 표면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깊은 곳에 일렁이고 있어서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림은 꼭 붓을 든 사람만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은 이미지와 매체가 한 덩어리를 이루는 상태이며 그로부터 이미지를 분별하는 관찰자의 응시를 통해 비로소 그림으로 작동한다는 한스 벨팅의 정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면,[1] 그림은 제작되기 이전에 발견되어야 한다. 물질이 축적되고 부식된 곳에서 무언가 시선을 끌 때 이미 거기에는 그림이 있다. 실제로 작가는 야외에서 이런 원형적 그림들을 관찰, 채집, 기록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시물 중 일부는 그 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지렁이 분변토, 둥글게 마모된 스티로폼, 부서진 유리 조각들의 바스락거림, 바싹 얼어붙은 수변 풍경을 찍은 사진. 물질은 “피부의 눈” 또는 촉각적인 시각의 수용체로서 그것이 거쳐온 시간을 각인한다. 작가는 그런 흔적을 남긴 원인을 추적하기보다 그로부터 출현하는 이미지의 약속에 집중한다.
이영호는 모든 것이 밝혀지기 이전의, 무언가 보이려고 하는 상태에 매혹되어 지난 수 년 동안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연작을 진행해 왔다. 눈 쌓인 땅, 주름진 피부, 나무의 나이테, 또는 그저 사물의 표면을 문질러 텍스처를 떠낸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거기서 어렴풋이 보이는 이미지들이 목표물을 관통하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 의해 조각된 것이 아니라 겹겹이 누적된 물질적 상호작용의 산물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 이미지들은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대상들의 접촉에 의해 발생한 해독불능의 흔적이며, 따라서 형상의 닫힌 윤곽선을 그리는 방식으로는 포착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이런 이미지들을 그림에 담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작가의 질문이다. 그는 전경과 배경을 구별하는 선을 버리고 물질적 입자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점들을 써서 자신이 발견한 이미지들을 본뜨려고 했다. 그 결과는 오래된 박물지에서 동판화 방식으로 인쇄된 삽화의 텍스처를 닮았다. 자연을 관찰하는 눈이 있고, 그것을 옮기려는 손이 있다. 다만 이 눈과 손이 붙잡으려는 것은 자연의 본질보다도 그것을 매개하는 시각성의 베일이다. 스스로 가시화되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할 방법을 탐구할 때, 그는 그림을 그리든 아니든 간에 화가로서 질문하고 있다.
최근 작업인 〈섬성〉 연작은 유리 지붕에 빗물이 고이면서 천천히 자라난 먼지 얼룩을 그린 것이다. 그 이미지에서 현미경으로 본 세포나 망원경으로 본 성운을 떠올린다고 해도 완전히 틀린 연상은 아닐 듯하다. 우주의 시공간적 두께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최신 이미지 기술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시각의 확장을 약속하지만, 작가가 천착하는 것은 이미 눈앞에 있으나 거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가시적 세계의 신비다. 어슴푸레하게 확산되는 얼룩의 경계부에서 안과 밖은 서서히 구별되고 있다. 모든 형상의 기원인 그 모호한 공간이 작가의 목적지인지 아니면 그가 한번은 거쳐가야 했던 순례지인지는알 수 없다. 다만 이 연작은 화가로서 이영호의 출발점이 되는 한국화의 전통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빗물에 녹은 미세한 먼지가 쌓여 눈에 보일 만큼 뚜렷한 얼룩을 남기는 과정은 먹을 종이에 흡수시켜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는 수묵 기법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그가 그리려는 세계와 그의 그림이 조성되는 지면은 어떤 공통의 원점에 도달한다. 물과 흙이 그림을 그린다. 그것을 인간의 시각 언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가는 궁극적으로 작가가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서 어디로 향하는가에 달렸다. 미시적인 입자들의 운동에 기반한 더욱 추상적인 회화로 발전할 수도 있고, 새로운 풍경화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종이 위에서 탁한 물이 흐르고 퇴적물이 형성되는 일종의 지질학적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 강 같은 시간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펼쳐져서, 그림이 된다.
[1] Hans Belting, An Anthropology of Images: Pictures, Medium, Body, trans. Thomas Dunlap (Princeton &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10-11.
윤원화 /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문화 연구자, 비평가, 번역자. 저서로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 불완전성에 관하여』, 『그림 창문 거울』,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고, 역서로 『사이클로노피디아』, 『포기한 작업으로부터』,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이 있다. 부산비엔날레 2022에서 온라인 저널 『땅이 출렁일 때』를 편집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다.
(EN)
Long time for an image to emerge
Young Ho Lee Solo Exhibition :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10 . OCT - 16 . NOV . 2023 _ prompt project gallery
Wonhwa Yoon /
Independent researcher, art writer, and translator
10 . OCT - 16 . NOV . 2023 _ prompt project gallery
Wonhwa Yoon /
Independent researcher, art writer, and translator
There is no rule as to what and how one must see when entering an exhibition space. If there is something like a picture displayed like picture, then one can rely on the conventional method of looking at a picture, but that is not as easy as it sounds. The method of creating and looking at a picture has constantly changed historically. Especially modern painting started with the reexamining of the obvious behavior of ‘drawing a figure of something.’ Many painters just paint with brushes and then examine the result. A paint stain that is not invested with image is, strictly speaking, not a picture, but just one question or pure exclamation about painting in its intransitive sense. Those paintings leap between question and exclamation marks to have a view of its own condition. In contrast, there are artists who create picture like thing without holding a paintbrush, and their end-products is a blatant pictures that either express what a picture is or even something which does not take on the conventional form of a picture.
Hence, at least four cases can be considered. First, showing a picture while affirming the picture. Second, not showing a picture while affirming the picture. Third, showing a picture while denying the picture. Fourth, not showing a picture while denying the picture. In the case of Young Ho Lee, at first glance, it seems to be the second case. In his solo exhibition,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things that are clearly not pictures are included, and picture-like works evoke the hesitation “Can these things be seen as pictures?” Drawing works, in which Jang-ji (Korean Traditional Mulberry Paper) is attached to a wood board and then covered with whitewash and rock powder, comes forth as an exquisitely- made object before as a picture. They give a similar impression as the white wall of the exhibition space. Perhaps a little weak to be a structure to support the building but strong enough for covering purposes; nonetheless, a scratch may appear if a very hard object comes into contact with it. Although paper is not optically-transparent as a surface of an object and body of picture, it holds a clear light. An image emerges as pigment and solvent are absorbed in a porous materialistic level. Perhaps the exhibition title is depicting this state. Pictures exist in the translucent depth of vegetable fiber, mineral grain, and animal glue. As it is swaying in a slightly deeper place below the surface which reflects the light, an image cannot be seen at a glance.
Hence, people who hold a paintbrush are not the only ones who can draw a picture. If Hans Belting’s definition of picture as the state of image and medium in one embodied form which operates as such only through the look of an observer who can discern an image from it,[1] is taken literally, a picture must be discovered before being produced. If on something attract one’s eye where matter is accumulated and corroded, then there is already a picture there. The artist has actually spent a lot of time outdoors observing, gathering and documenting these prototypical pictures. Part of the exhibition actually shows the results of the long-term survey earthworm casting, roundly worn out Styrofoam, rustling sound of shattered glass pieces, photos of completely frozen water edge landscape. Matter is “the eyes of skin” and a receptor of a tactile viewpoint that imprints the time it has gone through. Instead of pursuing the cause that left these traces, the artist focuses on the promise of the image which emerged from them.
Captivated by the stage before everything is revealed and when something is about to be seen, Young Ho Lee has been working on the Interprèteseries for the past several years. If there is a common point to these pictures of land covered with snow, wrinkled face, tree ring and a texture as if picked up by rubbing the surface of an object, images that are barely visible were not carved out through the human centered perspective of penetrating the target but rather discovered as the product of layers upon layers of accumulated materialistic interaction. These images are indecipherable traces that occur from encounters with countless varieties of objects, that therefore cannot be captured with the method of drawing a closed outline of a figure. Hence, is there another method of capturing these images? This is the artist’s question. He eliminated the line which divides foreground and background and used irregular dots reminiscent of materialistic particles to render the images that he had discovered. As a result, his pictures resemble the texture of illustrations printed in the copper engraving method in the old natural history books. There are the eyes that observe nature and the hands that want to transfer it on to paper. However, what these eyes and hands want to grasp is not the essence of nature but rather the veil of vision that mediates it. When researching for the method to completely convey the beauty of this world, he is questioning as painter whether he is drawing a picture or not.
His recent series ISLANDNESS are pictures of dust stains that grew slowly as rain water accumulated on a glass ceiling. If the image resonates seeing a cell through a microscope or a nebula through a telescope, it is not completely incorrect. Inside the spatio-temporal thickness of the universe, there is a limit to what we can see. Even though the latest image technology promises visual expansion which overcomes this limit, what the artist delved into is a tangible magic of the world which does not draw attention despite being in front of our eyes. The inside and outside of the boundary of the vaguely expanding stain is slowly being separated. It is impossible to know whether this ambiguous space which is the origin of all the figures is the artist’s final destination or just a place of pilgrimage which he had to pass through once. Nonetheless, this series strongly reminds us of the Korean painting tradition which was the starting point of artist Young Ho Lee. The process in which dust particles melted in a pile of rain water leaving clear stains visible to the eye is not different from theSUMUK (ink-and-wash) technique which makes an image appear by absorbing ink on paper. Here, the world he wants to paint and the paper where his painting is created reaches a common starting point. Water and soil draw the picture. How this will be translated in a human's visual language eventually depends on what the artist has learned from nature and where he is heading. It can develop into a more abstract painting based on the movement of microscopic particles or result in a new landscape. But whichever way he chooses, a kind of geological process in which turbid water flows and deposits form on top of water will continue. The river-like time will unfold as it forms before his eyes and becomes a picture.
[1] Hans Belting, An Anthropology of Images: Pictures, Medium, Body, trans. Thomas Dunlap (Princeton &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10-11.
Wonhwa Yoon is an independent researcher, art writer, and translator based in Seoul. She is the author of A Tale of Shells, or On the Incompleteness of Art and On the Thousand and Second Night: Visual Arts in Seoul in the 2010s (both published in Korean), and translated Friedrich Kittler, Reza Negarestani, and others into Korean. She also edited the online journal As the Ground Heaves for the Busan Biennale 2022, and co-produced Soft Places for the 10th Seoul Mediacity Biennale 2018.
피부의 눈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The Eyes of Skin And Other Precipitates
자연화 하는 자연 Nature Naturante 2016 / 2019 _ 1︎ 2︎
녹색광선 Rayon Vert 2018 / 2021 ︎
거리를 두고 있는 접촉 Avoir à distance (FR) _ Space Between Us (EN) ︎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Interprète / 매개자 (2013-2016) ︎
애매한 풍경 2010 Rechercher Projet ︎
ARTIST STATMENT
Lee Youngho
Space Between Us /Avoir à distance
I explore what we look at and what we experience through things adhered to the surface of an object. In my practice I suggest how we remember them. I am interested in all sorts of temporary forms that are positioned at the boundary between materiality and immateriality. The term temporary existence means objects that will disappear by the passage of physical time or stages in the process of change. My work visualizes this temporality and the moments these impermanent presences have through my personal investigation on fluid and living images, L’Image et du vivant. I focus on the surface of objects and their invisible other sides. The process of sensing these objects is based on various research projects. Reality and fiction sometimes overlap, or continue other stories that divide into several parts at the same time. My work starts from the nature of these objects that I observe, their environments, and the moment I face them. This takes place through my eco-biological analysis and my surroundings that are made up of these objects.
Body and Objects
In my first project ‘Objects in View Are the Outer Fabric of Invisible Clothes’, I found a roundabout route. When it comes to the ‘body, objects and events’, I collected objects, deconstructed, and reassembled them. I then found the invisible landscape that we can experience directly with our bodies. In this way, I visualize my perspective on space with both painting and installation.
Revealing the Hidden Side / Interprète
The term ‘Interprète’ suggests a revealing of the hidden side of the Latin language. This can be interpreted in many other ways than simply translating, interpreting and intermediary of the dictionary definition. I borrow the verbal meaning of rising to the surface, having no visible, or revealing of the other side. By drawing attention to invisible aspects, I investigate another method for a sense of physical distance in terms of time. ‘Seeing’ means practically seeing the skins of objects, but also the whole of the objects beyond the skins. My work shows derived possibilities from different views by the audiences, having the original concept of ‘Trans- Transformer’ as a basic direction. It plays the role of a bridge between the points of contact, while keeping a distance among the different works. ‘Seeing’ is being the action of keeping a distance. In this context, ‘keeping a distance’ is more like visuality than a tactile sensation. Since painting is ‘looking’ which had been the art made by touch, the action ‘looking’ requires you to keep your distance. I lead my audiences to overlap their mind with their eyes on the plane. Like looking adhered to the surface, this is not however, sta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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